나를 데려갈 저승사자들이 방금 사무실 문을 열고 도착했다. 이제 잠시 후면 5년간 생활했던 이곳을 떠나야한다. 짧지 않은 그 시간동안 정이 들대로 든 잡지사의 직원들. 자그마치 300만 명이나 되는 자식들을 여기서 낳았다.
이 사무실을 떠나면 내 몸에 A4용지가 걸릴 때 온갖 짜증을 부리며 옆구리와 머리통을 쥐어박던 서른 다섯 처녀 기자 K도, 갓 입사한 탓에 누구보다 나를 자주 이용하던 스물 일곱 루키 S 기자도 피붙이인 양 그리워질 것이다.
맞다. 난 복사기다. 이곳에 설치돼 있던 5년 동안 300만 장의 크고 작은 종이에 온갖 색깔의 그림을 그리고 갖은 사연을 글로 써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생명이 다한 나를 대신할 친구는 최근에 태어난 새 모델로 종이 걸림을 현저히 감소시켰고, 선명도를 확연히 높인 녀석이라 사무실 사람들에게 크게 환영받을 것이다.
내가 저승사자라 지칭했던 이들은 그 새 친구를 설치하러 온 서비스 기술자들. 그들의 손에 의해 화물용 엘리베이터에 실리기 전까지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여러분께 들려드릴까 한다.
한국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해는 1964년... 내 시조는 루이 다게르
먼저 내가 한국에 최초로 소개된 때로 거슬러 올라가자. 전후 복구가 완전히 끝나지 않았던 1960년 신도교역(현 신도리코)이 일본 리코사에서 수입한 내 조상을 서울 한복판 명동에 위치한 미우만백화점에 전시했다. 당시 사람들의 반응? 물론 "이게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였다.
신도교역은 수입에만 그치지 않고 생산에도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물로 1964년 한국 혈통을 가진 최초의 내 조상이 탄생하게 된다. 이름하여 디아조(DIAZO·청사진)식 복사기 'Ricopy 555'다.
▲ 복사기 생산공장의 모습. |
ⓒ 신도리코 제공 |
이 복사기술은 1924년에 획기적 전환기를 맞게 된다. 감광지를 이용해 현상과 복사를 가능케 한 내 시조 '디아조 복사기'가 생겨난 것이다. 1938년에는 미국인 체스터 칼슨이 현대화되고 세련된 할아버지 '정전식 복사기'를 발명했지만, 어떤 회사도 이 발명품의 특허권을 사려하지 않아 골머리를 싸맸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결국 칼슨의 발명특허권은 할로이드라는 회사가 사들였는데 그 회사는 내 친구들을 수백만 대 생산하는 굴지의 회사 제록스가 됐다.
위조지폐 제조 등에 악용하는 사람 있지만, 예술가들의 사랑 받기도
사무실 사람들이 모여 새로 온 내 친구녀석을 살펴보고 쓰다듬느라 정신이 없다. 아, 정든다는 것의 무상함이여. 하지만, 어쩔 것인가. 나보다 더 충실해 내가 해온 역할을 수행할 친구의 무병장수를 빌어줄밖에.
사라질 날이 가까우니 태어나던 날이 생각난다. 내 탄생에는 참으로 많은 사람들의 땀방울이 필요했다. 보다 더 효율적이고, 발전적인 모델을 만들어내기 위해 밤새 이어지던 '제품기획 회의'는 내 탄생의 서곡이었다.
기획이 확정되면 '개발 단계'로 넘어가는데 여기서 테마실시계획서와 제품설계개발계획서 등이 작성된다. 본격적으로 내 몸이 만들어지기 위한 도면이 그려지는 전 단계에 이르는 것이다. '설계 단계'에서도 지속적인 평가회의와 대책수립 회의가 이어진다. 나를 만들어온 전문가들은 사용자의 입장에 서서 사고하고, 판단하고, 결정을 이어간다.
▲ 1970년대 복사기 생산현장을 찾은 전 대통령 박정희. |
ⓒ 신도리코 제공 |
기술자들은 완성된 나의 품질을 모니터링하고 시장정보를 수집하는 단계를 거쳐 나를 사무용품 전시장 가운데 가져다 놓았다. 그날 내가 맛본 기쁨을 어찌 말로 표현할까. 모든 탄생에는 눈물과 환희가 배어있는 법이다. 그것이 아무리 하찮은 것일지라도.
요사이는 워낙에 첨단화된 내 친구들이 만들어지는 탓에 정교한 위조지폐가 만들어져 경찰과 은행당국을 긴장시키는 일이 왕왕 있다. 문명의 이기를 좋은 일에 사용하지 못하는 인간들을 볼 때면 나와 내 친구들은 서글퍼진다. 왜 우리까지 죄인을 만드는 것인지. 사람의 욕망이란 참으로 무서운 것인 모양이다.
하지만, 살다보면 슬픔과 실망의 양에 비례하는 기쁨과 보람도 있는 법.
'대량복제'라는 나의 키워드는 현대 자본주의의 물신숭배를 비판하는 예술적 코드가 돼 몇몇 팝아트 작가들은 나를 통해 만들어낸 각종 그림과 글을 당당히 갤러리에 전시하기도 한다. 예술발전에 한몫을 담담했다는 긍지. 그런 까닭에 작가들의 작업에 이용된 친구들은 우리들의 부러움을 독차지하기 마련이다.
내 삶의 진화... 건식 복사기와 아날로그 복사기를 거쳐 디지털 복사기로
한국에서 내 선조의 역사는 앞서 언급한 1964년 디아조식 복사기에 이어 1975년 보통용지 복사기를 거쳐, 1983년에는 건식 복사기로 이어졌다.
▲ 한국 복사기의 진화과정. |
ⓒ 신도리코 제공 |
2000년대는 내 시장에 두 가지의 주요한 진화가 이뤄졌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진화(AD변환)와 흑백에서 컬러로의 진화(BC변환)가 바로 그것.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내가 가진 소프트웨어적인 기능이 중시되는 변화까지 동반됐다.
그렇다면, 나와 친구들의 평균수명은 얼마나 될까? 디지털화 된 것들을 기준으로 하자면 시간으로는 약 5년. 흑백의 경우 1200만 장, 컬러는 300만 장의 종이에 우리의 흔적을 남기면 대략의 수명이 다한다.
한국에서의 내 시장 규모는 연간 8만여 대. 이중 50% 정도를 신도리코라는 회사가 점유하고 있다.
생이란 5년을 살건, 50년을 살건 혹은 전설 속 동물 봉황처럼 수천 년을 살건 그 시간의 길고 짧음에 관계없이 나름의 가치를 가지는 법이다. 나는 사무와 행정 등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다. 급속도로 진행된 한국의 경제성장 배경에는 분명 미약하지만 소중한 내 땀이 배어있음을 믿는다.
저승사자, 아니 기술자들이 내 몸의 전기코드를 콘센트에서 뽑고 있다. 지상에서의 내 삶이 다하는 순간이다. 하지만, 슬프지 않다. 이미 말했지만 나는 내가 가진 가치 이상을 실현하려 노력했고, 그 노력이 헛되지 않았기에.
삶의 마지막 순간. 러시아 옛 시인의 시 한 소절을 조용히 읊조려 본다.
마음은 미래에 살고/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모든 것은 순식간에 지나가고/지나간 것은 또 다시 그리움이 되리라.
나 대신 '슬픈 현재'를 '살만한 미래'로 바꾸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새 친구의 모습을 소개하는 것으로 나는 이만 '그리움' 속으로 사라지고자 한다. 모두들 안녕.
ⓒ 신도리코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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